영화 '하얼빈' 주인공이 겪는 전쟁 트라우마(PTSD)

희생의 신념 뒤에 숨은 트라우마의 그림자

영화 ‘하얼빈’(2024, 감독 우민호)은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의열단의 투쟁을 그린 작품입니다.

주인공 안중근(현빈)은 조국의 해방이라는 신념 아래 자신의 삶과 죽음을 철저히 국가에 헌신하지만, 그 내면에는 깊은 전쟁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쟁 트라우마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하며, 1980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공식 진단명으로 채택된 개념입니다.

극도의 공포나 생명의 위협을 경험한 후에도 그 사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거나 불면, 회피 반응 등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동지들의 죽음을 반복적으로 목격하며,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공포가 뒤섞인 ‘생존자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내면의 고통은 그의 결연한 눈빛과, 밤마다 흔들리는 손끝, 그리고 짧은 숨결로 스크린 속에 표현됩니다.

영화 정보

• 제목: 하얼빈 (2024)
• 감독: 우민호
• 주연: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 주요 심리 키워드: 전쟁 트라우마, 생존자 죄책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전쟁 속에서 만들어진 내면의 상처

1. 반복되는 기억의 고통

안중근은 전장에서 죽음을 목격한 뒤에도 그 장면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는 PTSD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인 ‘재경험 증상’으로, 실제 상황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때로 되돌아간 듯한 감정이 생생하게 재현됩니다.

2. 감정의 단절과 무감각

그는 전우를 잃고도 눈물을 보이지 않습니다.

극도의 상실을 반복 경험하면 감정 표현이 차단되는 ‘정서적 무감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제이기도 합니다.

3. 불면과 경계심

하얼빈의 어두운 장면 속, 안중근은 총성과 발자국 소리에 쉽게 반응하며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처럼 불면, 과도한 경계심, 예민한 반응은 PTSD 환자에게서 흔히 보이는 신체적 증상입니다.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유사 사례

재난 현장 구조 경험자

소방관이나 구조대원이 사고 현장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구조가 끝난 후에도 현장의 냄새나 소리만으로 심장이 뛰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군 복무 중 사고를 겪은 제대 군인

전역 후에도 특정 상황에서 총소리나 폭죽 소리에 극도로 놀라며, 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형 사고 생존자

교통사고나 붕괴 사고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비슷한 상황의 뉴스만 봐도 호흡이 빨라지고 손이 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트라우마의 그림자를 이겨내는 법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보여준 정신력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의미의 재구성’ 과정이기도 합니다.

PTSD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상처를 ‘무의미한 고통’이 아닌 ‘가치 있는 희생’으로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겪은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입니다.

심리치료와 노출 요법

전문 치료에서는 트라우마 상황을 안전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다루며 공포 반응을 줄이는 ‘노출 요법’이 사용됩니다.

인지행동치료(CBT)

비합리적인 생각이나 왜곡된 기억을 수정함으로써 불안을 완화시키는 인지적 접근이 도움이 됩니다.

사회적 지지와 공감의 회복

동료나 가족, 상담자와의 안정적인 관계는 트라우마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최근 통계에서도 심리상담을 받은 PTSD 환자의 72.3%가 증상 완화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보건복지부 정신건강실태조사, 2023).

다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

하얼빈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중근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은 고통의 과거가 아닌, 후대의 자유와 희망을 향해 있습니다.

이는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기보다, 그 고통을 끌어안은 채 살아내는 인간의 성숙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상처를 기억하면서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이유, 그 답을 하얼빈은 조용히 보여줍니다.